104살의 장수비결

한어병음 창시자 周有光

메스타임즈제공 570yong@paran.com
2009년 06월 10일(수) 10:14
"어처구니없고 황당한 일을 당해서도 화를 내지 마세요. 화를 내면 건강에 해로워요."

중국어 현대 발음 표기법인 한어병음(漢語병<재방변에 幷>音)을 창시한 올해 104살의 저우여우광(周有光) 선생은 28일 베이징의 자택에서 연합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장수의 비결을 이같이 털어놓았다.

100살을 넘긴 고령에도 여전히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저우여우광 선생은 '창밖의 큰 나무가 있는 풍경'이라는 제목의 자신의 수필이 실린 잡지 췬옌(群言) 5월호를 건네주며 환하게 웃었다.

"의사가 그러는데 별다른 병이 없데. 식사도 정상적으로 하고 낮에는 정신이 아주 맑아. 다만 귀가 좀 어두워져서 가끔 잘 못 알아들을 때가 있지만, 눈은 괜찮아."

고령의 대학자가 밝힌 장수 비결은 술·담배를 하지 않고 화를 내지 않는다는 좌우명에 있었다. <졸지에 황당하고 어려운 일이 닥쳐도 허둥지둥할 필요가 없다. 어찌할 방법이 없으니 화를 내지 말라(猝然臨之而不驚, 無故加之而不怒)>라는 옛 시에서 따온 이 좌우명 덕분에 문화혁명 등 어려운 시기를 무난히 넘겼다고 저우 선생은 술회했다.

저우 선생은 평생의 자랑스러운 일로 역시 한어병음 제정을 꼽았다. 중국어를 로마 알파벳으로 표기한 한어병음은 중국의 문맹퇴치와 현대 중국어 보급, 그리고 중국어 국제화에 결정적으로 기여했기 때문이다.

작은 체구에 여전히 어린 아이같이 부드러운 피부를 가진 선생은 한어병음이 중국어 휴대전화와 컴퓨터에 필수적이라는 점은 예전엔 미처 생각하지 못했다며 파안대소를 했다.

상하이 푸단(復旦)대학에서 경제학·금융학 교수이던 저우 선생이 한어병음 창시에 나선 것은 우연한 일로 시작됐다. 아마추어 언어학자이던 저우 선생이 지난 1955년 베이징에서 열린 전국문자대회에 참가한 것이 계기가 됐다.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는 그해 10월 쉽고 새로운 표기법을 만들 필요에 따라 전국문자개혁위원회를 만들었고 당시 저우언라이(周恩來) 총리가 직접 중국어, 영어, 프랑스어, 일본어 등 4개 언어에 능통한 저우 선생을 위원회에 초빙했다.

그가 몸담은 문자개혁위원회에는 15명의 학자가 있었지만 그러나 주로 한어병음 설계는 그의 주도로 예레이스(葉뢰<竹아래賴>士), 루즈웨이(陸志偉) 선생 등 2명이 참여하는 방식으로 진행됐다.

그와 함께 한어병음 창시에 참여한 학자들은 하나둘씩 모두 세상을 떠나 그만이 현재 유일하게 생존해 있다.

저우 선생은 한국어도 배웠지만 오랫동안 쓰지 않아 잊어버렸다고 했다. 그러나 한글과 한어병음은 자모를 사용하는 원칙은 같지만 운용 방법이 다르다고 기억하고 있었다.

90살이 넘어서부터 기억력 쇠퇴를 느꼈다는 저우 선생은 그러나 여전히 일반인에 비해 기억력이 뚜렷했다. 중요한 일은 연대는 물론 날짜까지 기억하고 있었고 사람 이름과 책 내용도 훤히 꿰고 있었다.

저우 선생은 한살 때부터 열살 때까지는 성장의 시기이며 20세부터 80세까지는 정상적으로 일할 시기이고 90세부터 100세까지가 쇠퇴기라고 말했다.

80세부터 인생이 다시 시작한다는 뜻으로 나이를 다시 세기 시작했다고 했다. 81세가 즉 한 살이란 것이다. 이런 뜻을 안 누군가가 92세 생일에 12살이 된 할아버지의 생일을 축하한다는 카드를 보내주자 그는 어린아이처럼 몹시 기뻐했다고 한다.

장쑤(江蘇)성 창저우(常州)출신으로 상하이의 기독교계 요한대학을 졸업한 그는 여동생의 친구였던 장윈화(張允和) 여사와 1933년 결혼한 이후 2002년 8월 아내가 92세의 나이로 세상을 뜨기 전까지 매우 화목한 가정생활을 했다.

결혼생활 70년간 한번도 큰 소리로 싸운 적이 없었다는 그는 아내와 매일 오전 10시에 차를 마시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다고 회고했다.

두 사람은 '다정한 사람은 늙지 않는다(多情人不老)'란 공동산문집을 펴내기도 했다.

미국에서 유학한 올해 76세의 외아들은 중국과학원 대기물리학연구소 국제전문가로 일하고 있고 손녀는 미국에서 IT 회사에 다니고 있다. 증손자가 내년에 대학입학을 앞두고 있으니 4세대가 한집에 살지는 못해도 지구상에 같이 살고 있다고 그는 미소를 지었다.

저우 선생은 한국인과 중국인은 역사상 형제라고 강조하고 한국에 교환 교수로 다녀온 베이징 대학의 제자 교수로부터 한국이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발전했다는 이야기를 전해들었다고 말하면서 한·중 관계가 더욱 발전하고 상호 소통과 이해가 깊어지기를 기원했다.

원로 학자로서 저우 선생은 후학들에게 전하는 당부의 말도 잊지 않았다.

그는 중국에는 '천하의 흥망에는 보통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天下興亡, 匹夫有責)'란 말이 있다고 소개하면서 "이는 중국 고대 지식인들을 이끌어준 잠언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우 선생은 "현재의 지식인들은 '역사의 진퇴에는 보통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歷史進退, 匹夫有責)'란 말을 가슴에 새기고 국가를 생각하고 세계를 생각해 행동해야 한다"며 학자들이 세계사의 진보에 책임을 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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