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연주 칼럼] 황야의 무법자 한겨레신문 제공 570yong@paran.com |
2011년 10월 17일(월) 12:11 |
케이블·위성·인터넷 방송과 같은 새 미디어들이 출현하기 전에는 ‘방송’이라 하면 공중에 있는 전파 통로인 ‘지상파’ 또는 ‘공중파’를 통해 방송신호가 송출되는 방송을 일컬었다. 송출 안테나를 통해 방송신호를 내보내는 모습이 마치 공중에다 대고 전파를 넓게 쏘는 모습이어서, 영어로는 ‘넓게 쏘는 것’, 즉 브로드캐스팅(broadcasting)이라고 부르는 모양이다. 현재 우리나라에는 지상파 방송으로 한국방송, 문화방송, 에스비에스, 교육방송이 있다.
그렇게 공중으로 쏘아 올린 방송신호를 각 가정에서 수신 안테나를 통해 받아서 방송을 보게 된다. 그런데 지상파는 험악한 산악과 같은 자연조건, 고층 빌딩과 같은 인위적 요인에 의해 방송신호가 제대로 잡히지 않을 경우 화면이 보이지 않거나 흐릿하게 되는 ‘난시청’이 발생한다.
게다가 지상파 방송은 방송 제작 설비뿐 아니라 전국에 방송신호를 송출하는 시설을 설치하기 위해 엄청난 자본이 필요하기 때문에 지상파 방송사를 개설하는 데는 거대자본이 필요하다. 이런 조건이 아무나 방송을 할 수 없는 높은 진입장벽으로 작용한다.
이런 조건들 속에서 기술이 개발되면서 새로운 방송 통로가 출현하게 되었다. 케이블·위성·인터넷 등의 통로를 이용하는 방송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이런 통로를 통해 방송 프로그램을 담은 채널들이 제공된다. 뉴스전문 채널도 있고 드라마, 오락, 영화, 스포츠, 만화, 다큐멘터리 등의 채널도 있다. 케이블이나 위성 방송에 이렇게 특정 장르의 프로그램을 공급하는 존재를 프로그램 공급자(PP·Program Provider)라고 부르고, 이들 프로그램 공급자들을 엮어서 패키지로 만들어 운영하는 지역 단위의 케이블회사가 바로 종합유선(케이블)방송사업자(SO·System Operator)다.
그런데 케이블방송사업자가 어떤 프로그램 채널들로 방송을 구성할 것인지, 어떤 프로그램 방송을 몇 번 채널에 배정할 것인지는 전적으로 케이블방송사업자의 권한이다. 한 가지 예외가 있다. <한국방송> 1텔레비전과 <교육방송>은 반드시 방송을 해야 하는 ‘의무 재전송’ 방송이다. 나머지는 사업자 마음대로다. 예컨대 <문화방송>을 방송하든 말든, <문화방송>에 몇 번 채널을 주든, 그것은 케이블방송사업자의 권한이다. 몇 해 전, 어느 지상파 방송이 지역 케이블회사의 행태를 비판하는 기사를 내보낸 적이 있었다. 그러자 케이블회사는 그 지상파 방송을 70번대 채널로 옮겨버린 적도 있다.
다만 지상파 방송 프로그램의 인기가 높으니 방송사업자가 시청자를 많이 확보하여 돈을 더 많이 벌기 위해 지상파 방송들을 ‘황금채널’(낮은 숫자의 채널)에 배정하고, 지상파 방송 고유채널 번호(예컨대 <문화방송> 11번)도 대부분 준다.
그리고 시청점유율이 가장 높은, 황금채널의 지상파 방송사 채널들 바로 이웃에 홈쇼핑 채널을 배정한다. 이유는 단 하나다. 홈쇼핑 채널에서 어마어마한 채널 사용료를 주기 때문이다. 5개의 홈쇼핑 채널이 황금채널 사용료로 전체 케이블사업자에게 연간 지급하는 사용료가 무려 4천억~5천억원이나 된다고 한다. 이들 홈쇼핑 업자들의 채널 사용료가 케이블회사 수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홈쇼핑 업자들이 그렇게 어마어마한 돈을 지급하는 이유는 지상파 이웃에 있는 황금채널에 사람들이 많이 찾아와서 장사가 잘되기 때문이다.
자, 이제 방송계에 등장한 황야의 무법자들 모습을 한번 보자. 지금 조선·중앙·동아·매경 종합편성 방송사들이 곧 케이블을 통해 방송을 시작하면서 요구하는 여러 약탈적 행태, 특혜 요구 중 하나가 바로 이 황금채널을 내놓으라고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들의 매우 든든한 후원자인 최시중 방송통신위원장은 “(개별) 협상을 하게 되면 어려움이 있으니, 두 그룹이 협상하는 게 바람직하다”며 가이드라인까지 제시했다. 말이 그룹 협상이지, 이건 힘센 언론들이 집단으로 언론이라는 무기를 들고 강도질을 하는 것과 별로 다르지 않다. 총을 들고 무법천지로 설쳐대는 황야의 무법자 행태다. 방송과 여론의 생태계를 황폐하게 만드는 조·중·동·매 방송의 약탈적인 무법자 행태는 이뿐이 아니다. 언론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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