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각국사 혜심'

'고종때 국사로 송광사 2대 주지'
진각국사 혜심의 발자취…'자치샘'과 '학서정' '민불

박하은 기자 he7677@naver.com
2017년 05월 05일(금) 14:52
<화순을 빛낸 역사적 인물을 재조명하여 화순군민들과 공유하고, 화순을 찾는 관광객들에게 화순의 역사적 인물과 역사적 장소를 알림으로서 화순의 자존감을 높이고자 한다. 편집자주>

진각국사 혜심은 화순출신으로 고종때 국사를 지내신 분이다. 전통불교의 맥을 이었던 한국 불교사에서 빠지지 않는 대문호로 ‘선문염송집’, ‘무의자 시집’등 많은 선시를 남겼다.

선문염송집은 스님들의 참선 지침서로, "중국에 만리장성이 있다면, 대한민국에는 선문염송집이 있다"할 정도로, 중국학자들이 높게 칭찬했다고 한다.

화순에서 진각국사의 자취를 찾을 있는 대표적인 곳으로는 탄생설화로 잘 알려진 화순읍에 위치한 ‘자치샘’과 버려진 갓난아이였던 진각국사를 학들이 보호하였던 곳인‘학서정’이 있다.

또한 진각국사가 만연사 창건을 기념하기 위하여 심었다는 만연사에 절 경내에 있는 전라남도 보호수로 지정된 전나무가 있으며, 화순읍 남산에 진각국사비가 있다.

화순군에서는 화순의 역사적 큰 인물인 진각국사를 기리기 위해 해마다 진각국사 추모제와 학술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진각국사 혜심(1178~1234)은 고려 고종 때의 승려로 속성(俗姓)은 최(崔). 법명은 혜심(慧諶). 자는 영을(永乙). 호는 무의자(無衣者)이다.

조계사 지눌의 가르침으로 스님이 되었으며, 지눌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조계종의 이세가 되었다.

고려 명종때 향청의 말단 향리의 과년한 딸이 옥에 갇힌 아버지의 석방을 위해 자치샘 물을 길어다 정화수를 떠놓고 기원했다.

어느 추운 겨울날 물을 길로 나온 배씨는 샘물에 떠있는 참외를 건져먹고 아이를 잉태하여 사내아이를 출산하게 된다.

처녀 몸으로 아이를 출산하게 된 배씨는 사내아이를 산속에 내다 버렸는데 큰 학이 하늘에서 내려와 아이를 보호하였다. 바로 이 곳이 '학서정’이다.

이를 희귀하게 여긴 사람들이 관아에 알려 어머니인 배씨를 잡아들였는데 자초지종을 들은 현감은 산신령의 조화라며 배씨를 풀어주었다.

그 아들이 바로 송광사 2대 주지인 진각국사 혜심이다.

화순 한천에서 태어나 성은 최씨. 자는 영을(永乙), 자호는 무의자(無衣子). 나주화순현 출신 완(琬)의 아들이며, 어머니는 배(裵)씨이다.

그는 어려서 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출가하기를 청하였으나 어머니는 허락하지 않고 유학(儒學)에 힘쓰라 하였다. 1201년(신종 4)사마시에 합격하여 태학(太學)에 들어갔다.

다음 해 어머니를 여의자, 당시 조계산(曹溪山)에서 수선사를 만들어 교화 활동을 하고 있던 지눌(知訥)에게 가서 어머니의 재(齋)를 올린 다음, 지눌의 제자가 되었다. 이때부터 그는 힘써 정진하였으며, 지눌은 혜심의 재능을 아꼈다.

1210년 지눌이 입적하자 혜심이 수선사로 돌아가 개당하였다. 1212년 강종이 수선사를 증축시키고 불법을 구하므로 그가 ‘심요’를 지어 올렸고, 당시 문하시중 최우는 그에게 두 아들을 출가시켰다. 고종은 왕위에 올라 혜심에게 선사에 이어, 대선사를 제수하였으며, 1220년(고종 7)단속사 주지로 명하였다.

진각국사 혜심은 1234년 6월 26일에 문인들을 불러 여러 가지 일을 부탁한 뒤 입적하였다. 그의 나이 56세, 법랍 32세였다.
박하은 기자 he767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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