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복귀파 형님들 부활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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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복귀파 형님들 부활 비밀

일본 복귀파 형님들 부활 비밀

▲ 일본에서 2군에 머무는 등 부진했던 김태균이 국내로 복귀해 펄펄 날고 있다. 사진은 김태균이 안타를 치고 기뻐하는 모습.


한국 프로야구가 사상 최고의 흥행 기록을 세우고 있다. 특히나 국외파 선수들이 경기를 치를 때면 구름 관중이 몰리고 있다. 한화 박찬호의 등판 때마다 전구장이 매진 사례를 기록 중이며, 넥센 김병현 등판 시는 평일 경기임에도 암표상이 등장할 정도다. 이뿐이 아니다. 삼성 이승엽과 한화 김태균이 불방망이를 터트리며 대구와 대전구장도 폭발적 관중 증가세를 보이고 있다. 네 선수는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뛰었다는 공통점이 있다. 일본에선 모두 성적이 좋지 않았다. 하지만, 한국 무대에선 연일 호투와 안타를 기록하며 또 다른 공통점을 쓰고 있다. 어째서 이들은 한국 프로야구에서 재기에 성공한 것일까.

‘그들은 일본에서 2군 선수들이었다. 그러나 한국에 돌아와선 괴물이 됐다.’ 모 스포츠케이블 야구해설가는 올 시즌 한국 야구계로 돌아온 국외파 선수들을 가리켜 그렇게 평했다. 틀린 말도 아니었다.

김태균·박찬호·이승엽·김병현은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활약했다. 이 가운데 이승엽을 제외한 나머지 선수들은 죄다 2군에서 뛰었다. 지바롯데 마린스에서 뛰던 김태균은 지난해 초반 31경기에 출전해 타율 2할5푼, 1홈런, 14타점을 기록하고서 2군으로 내려간 뒤 갑작스럽게 한국행을 선언했다.

화려한 메이저리그 경력으로 기대를 모았던 박찬호도 오릭스 버팔로스에서 뛰면서 1군에선 고작 7경기에만 등판해 1승5패 평균자책 4.29를 기록했다. 박찬호는 시즌 초반 부상으로 2군으로 내려간 뒤 다시는 1군으로 복귀하지 못했다. 지난해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한 김병현은 아예 1군 무대를 밟지 못했다. 그나마 지난해 유일하게 1군에서 뛰던 이승엽도 오릭스 유니폼을 입었을 땐 타율 2할1리의 저조한 성적을 거뒀다.

하지만, 1년 사이 이들의 인생은 역전됐다. 이승엽과 김태균은 현재 한국 프로야구 타격 전부문에서 상위권에 이름을 올리고 있다. 박찬호, 김병현도 지난해와는 전혀 다른 투구로 소속팀의 선발을 꿰찬 상태다.


# 이렇게 달라졌다

국외파 선수 가운데 가장 돋보이는 이는 바로 김태균이다. 김태균은 타율 4할3푼5리로 이 부문 1위를 달리고 있다. 출루율은 무려 5할2푼2리. 2타석 가운데 한 타석은 반드시 1루를 밟았다는 뜻이다. 홈런은 5개로 공동 9위, 타점은 28타점으로 공동 4위다.

많은 야구관계자는 김태균이 1982년 MBC(LG의 전신) 백인천 이후 31년 만에 두 번째로 4할 타자로 등극할지 깊은 관심을 나타내고 있다. 당시 백인천은 타율 4할1푼6리로 타율왕에 올랐다.

전망은 반반이다. 38경기를 치르는 동안 절반인 19경기에서 멀티히트(한 경기 2안타 이상)를 기록한 김태균을 두고 일부에선 “부상만 없다면 시즌 마지막까지 4할 타율을 유지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한다. 하지만, 반대편에선 “체력이 소진되는 여름이 시작하면 조금씩 타격 페이스가 처질 것”이라며 “상대 투수들도 김태균과 상대하면 할수록 약점을 찾아 집중공략하고, 결국 타율이 4할 아래로 내려갈 것”이라고 예상한다.

KBS 이용철 해설위원은 “타율 4할과 관계없이 김태균이 한국 무대로 돌아와 대성공을 거둔 것만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사실”이라며 “일본에서 돌아오고서 야구 실력이 더 늘었다”고 평했다.

이승엽의 활약상도 김태균 못지 않다. 이승엽은 타율 3할6푼8리로 김태균에 이어 이 부문 2위에 올라있다. 홈런은 8개로 공동 4위, 타점은 27개로 공동 7위다. 특히나 이승엽은 득점권 타율 3할9푼5리로 영양가 만점의 타격을 선보이고 있다.

무엇보다 이승엽은 일본에서 고질적 단점으로 지적받아온 좌투수와의 대결에서 우위를 점하고 있다. 올 시즌 그의 좌투수 상대 타율은 무려 3할7푼이다. 2008년 이후 4년 연속 타율 2할5푼 이하, 좌투수 상대 타율 2할 이하를 기록했던 이승엽이 한국 무대로 돌아와 극적인 재기에 성공한 셈이다.

박찬호도 고국무대에서 부활에 성공했다. 류현진에 이어 실질적인 한화 2선발인 박찬호는 2승3패 평균자책 3.63을 기록 중이다. 타선의 도움만 받았다면 4승 이상이 가능했다는 게 야구계의 중평이다. 그도 그럴 게 박찬호는 8번의 선발등판에서 퀄리티스타트(6이닝 3실점 이하)를 5번이나 기록했다.

놀라운 건 40세의 박찬호가 경기당 94.3개의 공을 던진다는 점이다. 애초 한화 한대화 감독은 박찬호의 한계투구수를 80개로 봤다. 하지만, 박찬호는 철저한 체력관리와 풍부한 노하우로 경기당 100개에 가까운 공을 던지면서도 꾸준히 선발 로테이션을 지키고 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과거의 영광으로 연명하는 퇴물 투수’란 소릴 듣던 박찬호는 20대 선수를 능가하는 체력으로 남은 시즌에서도 붙박이 선발로 뛰겠다는 자세다.

김병현 역시 한국으로 돌아오고서 몰라보게 달라졌다. 5월 초순까지 2군에서 몸을 만들던 김병현은 5월 8일 목동 LG전에서 한국 무대 첫 공식 데뷔전을 치렀다. 이 경기에서 구원투수로 나온 김병현은 6타자를 상대로 3안타를 맞고 1실점했다. 데뷔전치곤 무난했다는 평이 주류를 이뤘다.

김병현은 열흘 뒤, 18일 목동 삼성전에선 선발로 등판했다. 오랜만의 선발등판임에도 김병현은 4와 2/3이닝 동안 3실점하는 호투를 펼쳤다. 당시 삼진은 6개로, 삼성 타자들은 “메이저리그 출신답게 공 끝이 상당히 좋았다”며 “상대하기 까다로운 투수가 될 것 같다”고 말했다.

# 국외파 성공 비결

그렇다면 지난해 일본 프로야구에서 시쳇말로 죽을 쒔던 국외파 선수들이 한국 무대에서 펄펄 나는 이유는 무엇일까. 야구전문가들은 이들의 부활 이유를 세 가지로 설명한다.

먼저 한·일 야구의 현격한 실력 차다. 2010년 소프트뱅크 호크스에서 뛰던 이범호(KIA)는 일본 투수들과 상대하며 깜짝 놀랐다. “일본엔 각 팀마다 류현진, 오승환 같은 투수들이 즐비하다”는 게 이유였다.

“일본은 1선발부터 5선발까지 실력 차가 크지 않다. 한국처럼 4, 5선발이 나왔다고 긴장을 풀 수 없다. 불펜투수들도 누가 패전처리투수고 마무리인지 구별하기 어려울 만큼 기량이 비슷비슷하다.”

이범호는 일본 투수들의 강점으로 뛰어난 제구와 다양한 변화구를 꼽았다. “한국 투수들은 A급 투수를 제외하곤 스트라이크와 볼의 차이가 크다. 실투도 많은 편이다. 하지만, 일본 투수들은 타자의 약점을 꿰뚫고, 정확히 그곳에만 공을 던진다. 제구가 원체 좋아 실투도 거의 없다. 여기다 공 끝도 매우 좋다. 보기엔 시속 130㎞ 중반의 평범한 속구지만, 정작 치려고 하면 공이 사라진다. 공 끝의 움직임이 뛰어나 배트 앞에서 솟구치거나, 가라앉기 때문이다. 포크볼, 커브 등 종으로 떨어지는 변화구는 알고도 못 칠 만큼 각이 크다.”

김태균과 이승엽도 비슷한 이야기를 한 바 있다. 김태균은 “일본 투수들은 공 반개 차이로 스트라이크와 볼을 던질 줄 안다”며 “변화구도 한국 투수들은 속구처럼 오다가 중간에 휘지만, 일본 투수들은 처음부터 크게 휘면서 들어와 타격 타이밍을 맞추기 어렵다”고 털어놨다.

이승엽은 “일본 배터리의 공 배합이 우리보다 한수 위”라고 지적했다. “일본 포수는 스리볼 투스트라이크에서도 투수에게 포크볼 사인을 낸다. 한국 같으면 볼넷이 두려워 속구를 던지겠지만, 일본은 끝까지 타자를 유인한다. 더 기가 막힌 건 타자가 치지 않아도 포크볼이 스트라이크 존으로 들어온다는 것이다. 일본 배터리의 공 배합을 보고 혀를 내두른 적이 한두 번이 아니다.”

일본 타자들도 투수만큼이나 수준이 높다. 올 시즌 박찬호는 컷패스트볼을 무기 삼아 한국 타자들을 상대로 짭짤한 재미를 보고 있다. 9이닝당 5.84개의 삼진을 기록한 것도 컷패스트볼 도움이 컸다. 지난해 일본에서도 박찬호는 컷패스트볼을 자주 던졌다. 하지만, 올 시즌 같은 효과는 없었다. 9이닝당 삼진은 4.50개였고, 일본 타자들은 박찬호의 컷패스트볼에 잘 속지 않았다. 이미 일본 타자들이 컷패스트볼을 자주 보면서 내성을 기른 탓이다.

국외파 선수들의 두 번째 성공 배경은 고국무대의 프리미엄이다. 모 구단 투수코치는 “KBO리그의 젊은 투수들이 김태균, 이승엽을 상대로 몸쪽 공을 던지지 않는다”며 볼멘소릴 냈다.

“김태균과 이승엽이 일본에서 뛸 때 몸쪽 공이 약점이라는 게 밝혀졌다. 일본 투수들은 두 선수에게 집요하리만치 몸쪽 공을 던졌다. 몸에 맞는 공으로 출루시키는 한이 있더라도 최대한 약점을 공략해 안타를 맞지 않겠다는 전략이었다. 일본 투수 입장에서 김태균과 이승엽은 용병이니 만큼 몸에 맞혀도 미안한 감정이 덜했을 거다. 우리 투수들도 두 선수의 약점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경기 전 투수들에게 ‘몸쪽 공을 자주 던지라’고 주문한다. 하지만, 실제로 몸쪽 공을 집요하게 던지는 투수는 거의 없다. ‘혹시나 몸쪽에 던지다 장타를 맞으면 큰일’이라는 두려움과 ‘몸쪽 공을 던지다 선배들 몸에 맞히면 어떻게 하지’하는 걱정이 교차하기 때문이다. 몸쪽 공에서 자유로워진 두 선수에게 고국 무대의 젊은 투수들은 시쳇말로 ‘봉’일지 모른다.”

모 해설가는 박찬호가 두산을 상대로만 2승을 거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찬호가 기록한 2승 모두 두산이 제물이었다. 첫 승을 따냈을 때 박찬호가 ‘두산 선수들이 페어플레이를 해줘 고맙다’고 했다. 그럴 만도 했다. 두산 타자들은 2번의 대결에서 악착같은 맛이 없었다. 박찬호의 빠른 투구간격에 질질 끌려갔다. 반면, 삼성과 롯데 타자들은 박찬호의 빠른 투구리듬에 끌려가지 않으려고 일부러 타석에서 벗어나는 등 자기만의 리듬을 유지하려 했다. 박찬호가 ‘한국 타자들의 스포츠맨십이 아쉽다’고 꼬집었지만, 일본 타자들은 우리보다 더하다. 게다가 심판의 허락을 받고 타석에서 벗어난다고 스포츠맨십이 아쉽다고 지적하는 건 지나치게 자기중심적인 사고다. 만약 두산이 박찬호를 선배가 아닌 상대 투수라고만 생각했다면 그렇게 허무하게 2번 모두 패하진 않았을 거다. 이것이야말로 고국무대 프리미엄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

# 스트레스 ‘훌훌’

마지막 성공 배경은 편안한 리그 분위기와 선수들의 마인드다. 일본에서 뛸 때 김태균, 이승엽, 박찬호, 김병현은 팀 승리를 위해 고용된 용병이었다. 성적 부담감이 엄청 났다. 공교롭게도 김병현을 제외하곤 팀 내 최고 연봉자들이라, 조금이라도 성적이 부진하면 동료와 코칭스태프의 눈치를 살필 수밖에 없었다.

문제는 극심한 부담감이 스트레스로 작용하고, 급기야 자신감 상실과 기량 저하로 이어졌다는 데 있다. 과거 요미우리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넥센 정민태 코치는 “몸값을 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매번 스트레스로 작용했다”며 “조금만 부진해도 구단의 대우가 바뀌는 등 항상 쫓기는 마음으로 마운드에 올랐다”고 고백했다.

정 코치는 “한국에서 뛸 땐 동료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스트레스를 풀었지만, 일본에선 대화 상대가 거의 없었다”며 “어쩌면 국외파 선수들에게 가장 큰 적은 외로움일지 모른다”고 강조했다.

사실이다. 김태균, 이승엽은 고국 무대에서 뛰며 웃음을 되찾았다. 다소 부진해도 미소를 잃지 않는다. 이용철 위원은 “용병 신세에서 벗어나 선후배들과 뛰면서 국외파 선수들이 상당히 밝아졌다. 심적 안정을 되찾으니까 실력도 예전으로 돌아온 것 같다”며 “특히나 4명의 선수가 지난해 일본에서 부진할 때도 성실히 훈련하고, 몸을 만든 게 올 시즌 맹활약의 배경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화순클릭 570yong@para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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