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순 동복 황금 들녁 |
김삿갓(1807~1863)이 자주 이 곳에 올라 시를 지었다는 망미대.
멀리 옹성산이 보이고, 백아산이 한 눈에 들어오는 명당으로, 눈을 돌리면 동복 숲정이 마을 전경 또한 그림같이 펼쳐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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망미대 유래를 적은 비석엔 다음과 같이 쓰여 있다.
강제(强齊) 정시룡(丁時龍 1837~1909) 선생은 압해 丁씨 창원군파 종중인 동몽교관 백인당(百忍堂) 정치업(丁致業) 선생의 후예로 1863년 김삿갓 사망 때 장례를 주선하고, 초분을 마친 뒤 3년 뒤 유해를 인계한 것으로 확신되는 사람이다.
임오군란, 갑신정변 등 외침으로 나라를 지켜야 할 위치에서 교목세신(喬木世臣)하여야 할 사람들이 썩은 양고기에 개미 떼 달려 붙듯 자기이익에만 앞 다투어 달려드는 것을 보며 울분이 끓어올라 참을 수 없어 방황하다가 구산(龜山.蝸牛山)을 바라보니 푸른 절벽이 두어질 높이로 옹립(擁立)되어 있는 것을 보고 붓을 들어 望美臺라 써서 새기고 경모(敬慕)하고 첨모지의(瞻慕之義)를 생각하며 북쪽 하늘을 쳐다보며 “임금님은 하늘에서 북두칠성의 기운이 드리워 주십시요”라고 기원했다.
옛날 宋 소동파는 赤壁강에 배를 띄우고 천애(天涯)의 동떨어진 곳에서 임금이 있는 곳을 향해 적벽부를 지어 임금에 대한 충성심을 알렸다고 쓰여 있다.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은 때가 1080년대쯤 되니 김삿갓은 그로부터 약 780년 뒤에 이곳의 적벽을 감상하며 많은 시를 남겼을 것으로 추측된다.
멀리 보이는 옹기같이 보이는 산이 바로 옹성산이며 그 앞이 천하 절경 적벽이다. 동복은 확실히 김삿갓이 애착을 가진 시상(詩想)의 주요 무대였음이 분명하다. 가을 구름을 바라보니 정신이 높게 날아오른 기분이다.
한편 화순군은 최근 동복면 구암리 김삿갓 종명지 복원사업을 완료한데 이어 동복면소재지에서 구암리 망미대 가는 길을 ‘김삿갓로’로 명명하고 새 주소판을 세우는 등 김삿갓 유적지 정비사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
화순클릭 570yong@paran.com